<명구>
繼志述事
<해설>
선인의 유지를 받들고, 유업을 계승한다.
<내용>
『중용』에서 효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대저 효란 선인(先人)의 유지(遺志)를 잘 받들고, 그 유업(遺業)을 잘 계승하는 것이다[夫孝者, 善繼人之志, 善述人之事者也]”라고 하였다. 여기서 선인이란 살아계시는 부모와 조부모, 돌아가신 부모와 직계 조상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은 진정한 효란 어버이의 감각기관을 즐겁게 해 드리는 양구체(養口體)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뜻을 받드는 양지(養志)에 있다는 말과 같은 취지의 의미라고 하겠다.
흔히 ‘효자는 부모가 만든다’고 말한다. 이 말은 아무리 부모에게 잘해드려도 부모가 남에게 “우리 자식은 불효자”라고 하면 불효자가 되고, 부모에게 제대로 못해 드려도 남에게 “우리 자식은 효자”라고 하면 효자가 된다는 의미이다. 자식의 효, 불효 여부가 부모에게 달렸다는 이 말을 필자는 조금 다르게 해석하고자 한다. 자식이 효자가 되는 것은 그 의무와 책임이 도리어 부모에게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모는 이 의무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내 자식이 효자가 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것은 내가 가슴 속에 품은 삶의 궁극적인 목표 곧 지향처(志向處)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내가 먼저 여기에 도달하기 위해 전심전력(專心專力)하는 삶을 살 수 있느냐의 여부에 달렸다고 본다. 이때 이 지향처는 반드시 ‘시대성, 공공성, 전문성을 지닌 어떤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위가 아닌 과업지향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한다면 이 일을 나라는 존재가 살아 있는 동안 이루건 못 이루건 지켜보는 자식은 반드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를 본받아 ‘하고자 하는 내 일’을 갖게 되면 이것이 곧 ‘계지술사’의 시작이며, 이에 그 자식은 성공적인 삶 뿐 아니라 부모 혹은 선인에게 효도하는 삶을 살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돌아가신 조부께서 평소 자주 하신 말씀이 있다. “가슴속에 훈훈한 덕의(德意)를 품고 천하 사람들을 살리는 그런 자손이 우리 집안에서 나왔으면 좋겠다.” 이 말씀을 필자는 『논어』에 나오는 ‘널리 덕을 베풀어 사람들을 구제하는 박시제중(博施濟衆)’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비록 필자가 이 유지를 제대로 받들면서 살지는 못해도 내 삶이 어떤 형태로든 이 말씀과 연관되도록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조부께서 품었던 이 꿈이 실현될 날이 올 수 있으리라고 낙관하며, 그 날을 앞당기는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도록 해야 하겠다고 다짐한다. 필자도 이 말을 내 자식들에게 들려주어 그들이 기꺼이 ‘계지술사’하는 효자의 삶을 살도록 나의 의무와 책임을 다할 것이다. 이에 우리 대학생들도 각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기 위해 훗날 자녀들에게 어떤 유지와 유업을 남기려고 하는지 한 번 상상해 보기를 권유한다.
<출처> : 『中庸』 第19章.
<집필자> : 손병욱 /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윤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