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過猶不及
<해석>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내용>
몇 해 전에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과유불급’을 말하는 것을 듣고서 놀란 적이 있다. 대학 교수이기도 했던 그 진행자는, 아마도 미리 준비했던 것으로 보이는 마무리 발언에서 이 말을 들면서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만 못하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같은 말을 신문에서, 유명 평론가의 발언에서, 심지어는 결혼식 주례사에서 듣게 되었다. 대학의 강의 시간에 물어본 적이 있는데 학생들의 대답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정도면 국어사전에 ‘과유불급’의 의미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과연 과유불급을 이렇게 사용해도 되는 것인가.
이 사자성어는 『논어』 「선진」편에 나오는 공자와 제자의 문답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다지 길지 않으므로 문답 전체를 한번 들어보자.
자공(子貢)이 “사(師, 子張)과 상(商, 子夏) 중에서 누가 더 뛰어납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사는 지나치고 상은 미치지 못한다”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사가 더 낫다는 말씀입니까?”라고 하자 공자가 말하였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이 짧은 문답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은 “자장과 자하는 모두 중(中)을 얻지 못했다[俱不得中]”(하안 『논어집해』), 또는 “두 사람은 중을 잃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이다[其失中則一]”(주희 『논어집주』)라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서 주희의 『논어집주』에서는 “성인의 가르침은 지나친 것을 억누르고 미치지 못한 것을 이끌어서 중도(中道)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라는 윤돈(尹焞)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결국 ‘과유불급’의 요점은 지나친 것이나 미치지 못한 것이나 똑같이 잘못된 것이므로 과불급이 없는 중(中)의 상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데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 말이 이와는 조금 다르게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일간지 두 곳의 기사를 검색해 보았더니 과유불급은 대체로 두 가지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정도가 지나치면 도리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한다”, 한마디로 말해 “넘치면 탈이 나는 법이다”라는 것이다. ‘지나친 것을 억누른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러한 용례는 과유불급의 본래적인 의미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두 번째이다. 앞에서 들었던 것처럼 수많은 기사에서 과유불급을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혹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라고 해석하고 있었다. 과도한 것에 대한 경계를 넘어서 이제는 “아무리 좋은 일도 지나치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하다”는 의미로 이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과유불급에 대한 오용(誤用)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말이란 살아 있는 것이어서 본래의 의미와 파생된 의미가 있다. 이러한 파생된 의미로 인해 우리의 언어생활이 풍부하게 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는 법이다. 한자는 하나하나의 글자가 일정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뜻글자이다. ‘過猶不及’에 사용된 네 자의 의미를 아무리 조합하더라도 거기에서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의미는 나오지 않는다.
요즘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는 문제로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과유불급’의 오용을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한자 혹은 한문에 대한 감각이,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의 전통 문화에 대한 교양이 나날이 떨어지고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출전> : 『論語』 「先進」
<집필자> : 윤상수 / 퇴계학연구원 전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