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此心精明, 字好亦在其中矣
<해석>
그 마음이 순수하고 밝으면 글씨를 잘 쓰는 것도 그 안에 있다.
<내용>
예술은 장르를 막론하고 기술적인 연마를 요구한다. “연습을 하루 안하면 스스로 느끼고 일주일 안하면 주위 사람들이 눈치 채고 한 달을 안 하면 관객들이 안다”는 말이 있듯이, 예술행위자에게는 끊임없는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시간 노력해서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마음[心]’에 ‘진정성’이 없다면, 왕양명은 그것을 예술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에게 예술 행위자의 ‘마음[心]’은 예술의 시작임과 동시에 완성이기 때문이다.
왕양명(王陽明, 1472~1528)은 “정명도 선생은 ‘나는 글씨를 쓸 때 매우 경건하다. 글씨를 잘 쓰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 잘 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 것인가. 옛 사람들은 언제든 어떤 일에서든 단지 마음으로 배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明道先生書曰: ‘吾作字甚敬, 非是要字好’. 非要字好, 又何學也. 乃知古人隨時隨事只在心上學].”라는 말을 들어 글씨를 쓸 때의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몸으로 표현하는 예술은 자신의 마음이 몸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춤의 경우 움직임마다 마음이 깃들어 있고 그것이 기로 발현될 때, 관객과 교감을 나눌 수 있고 그렇게 할 때 관객이 감동한다. 그 ‘마음’은 인욕이 천리를 가리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무용계의 대가 선생님들은 한 결 같이 “마음이 고와야 춤이 곱다”, “욕심 많은 사람들은 춤에 욕심이 붙어 있다”는 등의 말로 춤의 기술적인 면보다는 먼저 마음을 다스릴 것을 강조했다.
“마음이 없으면 몸도 없고, 몸이 없으면 마음도 없다[故無心卽無身, 無身卽無心]”(『전습록』 권하 201조목)라는 왕양명의 말은 진정 ‘안다[知]’고 한다면 ‘실천[行]’이 있고, 그렇지 않다면 실천이 없게 된다는 뜻과 행위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담겨 있지 않은 행위는 어떠한 의미도 전달하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없다는 것을 뜻한다.
왕양명에 따르면 예술은 사람다움의 근본을 우선하기 때문에 예술을 행하는 사람은 어진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모두 소용없는 일이다. ‘정명(精明)’은 예술에서 변함없이 요구되는 것으로, 마음이 순수하고 밝으면 그 안에서 저절로 잘 쓰는 글씨가 나오게 되고, 잘 추는 춤도 나오게 된다. 예술행위의 진정한 의미는 기술적인 연마가 아니라, 내면의 긍정적인 변화 즉 깨달음을 얻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순수하고 밝으면 저절로 진정한 예술을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예술가는 진정성 있는 예술 활동을 관객들은 짝퉁을 가려낼 수 있는 혜안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출전> : 『왕문성전집(王文成全集)』권32 「연보(年譜)」
<집필자> : 김미영_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