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見牛, 未見羊.
<해석>
눈앞에서 괴로워하는 소의 고통은 보이지만 눈앞에 없는 양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다.
<내용>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에서 있었던 일이다. 국가의 중요한 활동을 기념하기 위해 소 한 마리가 제물로 끌려가고 있었다. 영리한 소는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선왕은 차마 그 슬픈 모습을 볼 수 없다며 소를 놓아주라 명했다. 소가 없으면 제사가 진행될 수 없을 터, 신하들은 제사 행위 자체를 없애려는 것이냐며 제선왕에게 따져 물었다. 이에 제선왕은 이렇게 답한다. “양으로 바꿔라.”
제선왕을 알현한 맹자는 제선왕의 이런 모습을 칭찬한다. 소의 두려움에 공감하는 제선왕의 마음씨야말로 그에게 인(仁)한 마음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라 말한다. 그러나 제선왕의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행태에 대해 우리는 자연스레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소의 목숨만 목숨인가? 보이지 않는 양의 생명은 생명이 아니란 말인가?”
인간에게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선천적 능력이 있다. 유교에서는 이를 인(仁)이라 말하며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다. 유교에서는 이를 지혜[智]라 말하며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드러난다고 말한다.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조슈아 그린(Joshua Greene)은 인간이 도덕적 판단을 할 때 감정에 의거한 직관이 우세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는 반면 이성에 의한 합리적 추론이 우세하게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한다. 이를 이중과정이론이라 말한다. 두려움에 벌벌 떠는 소가 우리 눈에 비칠 경우 우리는 소의 고통에 공감하면서 소를 해방시키는 선택을 하게 된다. 반면 양이 우리 눈에 비치지 않을 경우 우리는 비록 양이 죽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정서가 자극받지는 않기 때문에 양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제사를 유지해야 한다는 합리적 선택을 하게 된다.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는 소를 보는 고통을 참지 못한다는 감정과 국가적 제사행위를 치러야 한다는 이성적 판단 사이에서 결국 제선왕은 소 대신 양을 제물로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이성적 판단력을 잃지 않았다.맹자는 합리적 판단에만 몰두함으로써 인간으로서 마땅히 지니고 있어야 할 공감능력을 잃은 당시의 위정자들에게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계산적이며 결과 지향적인 공리주의적 가치관이 우세한 세상에선 인간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서적 공감에만 치우쳐 합리적 선택을 그르치는 행위를 긍정한 것은 아니다. 비록 양을 희생하더라도 제사를 유지해야 한다는 제선왕의 합리적 선택이야말로 맹자의 관점에서는 인(仁)과 지혜[智]를 동시에 구현하는 이상적인 선택이었다.
<출전> : 『맹자(孟子)』 「양혜왕상(梁惠王上)」
<집필자> : 채석용_대전대학교 혜화리버럴아츠칼리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