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上作器, 民備樂之, 則爲和.
器(기) 기물, 악기 備(비) 모두, 갖추다
<해석>
왕께서 종을 만드신 것을 온 백성이 즐거워해야만 그 소리가 조화롭습니다.
<내용>
음악은 단골 방송 소재이다. 전국노래자랑과 가요무대처럼 30년이 넘도록 건재하는 프로그램이 있는가 하면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이 인기를 끈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이들을 음악으로 향하게 하는 것일까? 그 답은 음악과 즐거움을 모두 뜻하는 악/락(樂)이라는 한자에 이미 담겨 있다. 음악으로 향하게 하는 힘에는 즐거움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고대 중국에서는 무엇에 초점을 맞춰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즐거움을 이야기했을까?
여기 한 왕은 커다란 종을 만들어 놓고 매우 흡족해 한다. 거대한 악기가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절, 커다란 종은 그 크기만큼이나 큰 즐거움으로 다가온다. 즐거움에 취한 왕에게 종소리는 조화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악관은 왕의 평가에 제동을 건다. 온 백성이 즐거워해야만 그 소리가 조화로울 수 있는데, 백성의 고혈을 짜내 만든 종이기 때문에 조화로울 리 없다는 것이다.
고대 중국인에게 음악적 조화는 음악 요소에만 달리지 않았다. 사람들과 이루는 조화 역시 음악적 조화에 중요했다. 음악은 즐거움을 불러일으키며 개인의 생명력을 증진시킨다. 하지만 개인에 국한된 즐거움이어서는 안 된다. 더 많은 사람들의 즐거움을 고려하면서 개인을 넘어 공동체 전체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한다. 이럴 때에라야 지극한 즐거움에 이르게 된다.
여기 또 다른 왕은 세속 음악을 즐긴다. 자신의 음악 취향이 꺼림칙했던지 음악을 좋아한다는 말이 사실이냐는 맹자의 물음에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선왕의 음악이 아닌 세속 음악을 좋아한다고 굳이 안 해도 될 말을 한다. 맹자는 선왕의 음악이나 세속 음악이나 다 같은 음악이라면서 음악을 좋아하신다면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이라는 의외의 말을 한다. 세속 음악을 즐기는 취향에 주눅 든 차에 오히려 통치에 도움이 된다고 하니 왕은 반색하며 그 이유를 묻는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은 즐거움이라는 감정에 열려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냉담한 왕보다는 감정이 풍부한 왕이 통치에 더 적합하다. 본인의 감정을 미루어 타인의 감정을 헤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즐거움을 소중히 여기는 왕이라면 백성의 즐거움에도 마음이 미칠 수 있다. 어떤 음악이냐는 별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음악을 즐기는 방식이다. 제아무리 선왕의 음악을 즐긴들 군주 일 인의 즐거움을 위해 백성을 고통으로 몰아간다면 이는 주눅을 넘어 심각하게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타인의 즐거움도 중요하다는 것을 아는 왕이라면 음악 향유에 힘쓰는 만큼 민생도 돌볼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왕이 음악을 통해 얻는 즐거움은 온 백성의 지지를 받으며 배가된다.
고대 중국인들은 음악적 조화와 그로 인한 즐거움은 다른 이의 즐거움을 고려할 때 비로소 성립한다고 여겼다. 음악이 넘쳐 나는 시대에 음악을 향한 우리의 욕망 역시 타인과 함께하는 장을 지향할 때 더 큰 즐거움으로 귀결될 것이다.
<출전> 『국어(國語)』 「주어하(周語下)」
<집필자>
조정은 / 성균관대 유교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