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聽其言也, 觀其眸子, 人焉廋哉
聽(청) 듣다 觀(관) 보다 眸(모) 눈동자 廋(수) 숨기다
<해석>
그 말을 듣고, 그 눈동자를 살핀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속일 수 있겠는가?
<내용>
“내 눈을 보고 말해요”
연인사이에서 티격태격하며 진실공방을 할 때 종종 무언가 잘못을 한 상대방에게 다그치며 하는 말이다.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보고서는 적어도 거짓말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전제된 것이다. 그런데 진정 눈을 보고서는 거짓말을 할 수 없는 것일까? 엄격한 유학자로 알려진 맹자는 진작부터 사람의 심중의 선악을 살펴 알게 해주는 것으로 그 사람의 눈동자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단언하며 눈동자는 그 마음속의 악을 숨기지 못한다고 했다. 내 눈을 보고 말하라는 남자 주인공의 주문은 적어도 맹자의 시각에서는 정당한 것이다. 맹자의 눈동자에 대한 철학은 나름 일가견이 있어서 “마음속이 올바르면 눈동자가 밝고. 마음속이 올바르지 못하면 눈동자가 흐리다.”고까지 했다.
물론 맹자가 사람의 정체를 파악하면서 눈동자의 밝고 흐린 정도로 그치려 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 말을 듣고, 그 눈동자를 살핀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속일 수 있겠는가?” 그의 말을 듣는 것은 그 말속에서 식견과 정서를 파악하려는 것이고, 그 눈동자를 살피는 것은 눈동자의 밝고 흐림을 통해 그 말의 진정성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말을 들어 지적 능력을 보고, 눈동자를 살펴 마음의 올바름을 짚어본다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속일 수 없다는 것이다. 전국시대라는 난세에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급선무였던 맹자에게 상대를 파악하는 이러한 안목의 기준은 나름 그 효용이 있었을 것이다.
공자가 처음 그 말만을 믿고 그 사람을 믿었다가 이후 그 행실을 살펴보게 된 것은 말만을 믿는 실수를 실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자의 후학 맹자는 행실을 살피라고 하지 않고, 그 사람의 눈동자를 살펴보라고 한 것이다. 상대가 그 스스로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는지 시간을 두고 경험적으로 확인해보라는 공자의 가르침에 비해 맹자의 가르침은 좀 더 직접적이고 직관적이다. 바로 그 말을 하는 그 순간에 그 사람의 눈동자를 보아 그 진정성을 바로 파악하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들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와 형편이 달랐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그의 말과 그의 눈동자의 밝고 흐린 정도로 그 사람의 전모를 파악하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 것일까라는 의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험지로 몰아갔던 대부분의 사례는 기막히게 말 잘하던 사람들의 오도에 의한 것이 적지 않았다. 히틀러는 얼마나 명연설가였던가? 지금도 우리의 역사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일부 정치가들은 얼굴색 하나 바꾸지 않고, 거짓말을 한다. 그들의 눈동자는 흐리지도 않다. 증명사진으로 활용되는 수많은 사진들을 보면 그들의 눈동자는 누구보다도 밝다. 그러므로 맹자는 말을 통해 식견을 파악하고, 눈동자의 밝고 흐린 정도를 통해 그 진정성을 파악하고자 했다. 그가 말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 눈동자를 통해 흉중의 바른 정도를 비출 수 있다고 한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선량한 인간을 상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맹자에게서는 그러한 존재가 사람이었다.
<출전> : 『맹자』 「이루장구(離婁章句)」 상
<집필자> : 함영대 /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 책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