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天下莫樂於時受之境也
莫(막): 없다, 불가하다 境(경): 경계, 곳, 처지
<해석>
천하에 지금 누리고 있는 지경보다 즐거운 것은 없는 법이다
<내용>
다산 정약용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어사재기(於斯齋記)」는 ‘사(斯)’의 의미를 정리한 글이다. 이글에서 다산은 현재 나에게 없는 것을 ‘저것[彼]’이라고 하고 나에게 있는 것을 ‘이것[斯]’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의 마음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늘 ‘저것’을 바라고 기웃거리므로 이를 경계하라고 말한다. 다산은 ‘사(斯)’의 의미로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지경보다 즐거운 것은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지금이라는 시공간[時受之境]에서 일상적으로 그 즐거운 것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춘추시대 진문자(晉文字)는 집을 지어 놓고 “이곳에서 노래하고, 이곳에서 운다[歌於斯哭於斯]”라고 기도했는데, 이에 대해 다산은 내 자리에서 만족을 찾고 남에게서 만족을 찾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이 말을 일생을 통해 실천에 옮겼다고 한다. 예를 들면 그는 어디에 있든지 자신이 처한 공간을 정성껏 꾸미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젊은 시절 서울 명례방(지금의 명동)에 살 때는 번잡스러운 도시 한복판의 협소한 마당이 답답해 국화를 비롯한 열여섯 그루의 꽃나무들을 심어놓고 꽃이 피면 벗들을 불러놓고 밤중까지 술을 마시며 놀며, “한 해가 늦어 가매 쌀이 외려 귀하지만, 집이야 가난해도 꽃은 더욱 많다네[歲熟米還貴 家貧花更多]”라고 읊었고, 강진에서 곤궁한 유배생활을 할 때에도 여기저기 거처를 옮겨 다니다가 간신히 초당에 거처를 잡아 은거했는데, 거기서도 다산은 철따라 피고 지는 꽃을 심고 집 아래 자갈을 쌓아 샘물을 가두고 미나리도 심었다. 또 비탈을 깍아 아홉 층 돌계단 텃밭을 만들고 작은 연못도 넓게 파 운치 있는 공간으로 꾸며놓았다. ‘그곳’은 그가 잠시 얹혀 사는 처지였음에도 마치 주인처럼 정성을 쏟아 ‘이곳’으로 가꾼 것이다. 정약용의 대부분 업적은 이 시기에 이루어졌고, 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여러 이상적 개혁안을 제시한 것도 이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독서와 저술에 몰두하는 틈틈이 이곳에서 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이처럼 다산은 고통의 세월을 학문의 대성기로 전환하는 위대성을 발휘한 것이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자포자기했을 힘겹고 긴 시간 동안, 올곧게 자신을 세워 뚝심 있게 공부에 맹진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바로 일상, 즉 지금의 나에게 충실했기 때문이다. 그는 「어사재기」의 마지막을 이렇게 정리했다. “천하에서 일컫는 바 미(美)와 선(善)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이것’으로 되어 있으니 ‘이것’의 최상을 다하면 다시 더할 것이 없는 것이다.”
<출전> :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어사재기(於斯齋記)」
<집필자> : 안호숙 / 소속 Gallery 香遠齋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