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惡(오): 싫어하다, 미워하다, 꺼리다 毋(무): 하지 말라 使(사): 부리다 事(사): 섬기다
<해석>
윗사람으로부터 당할 때 싫었던 방식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으로부터 당할 때 싫었던 방식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라.
<내용>
윗사람으로부터 당할 때 싫었던 방식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으로부터 당할 때 싫었던 방식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라. 앞사람으로부터 당할 때 싫었던 방식으로 뒷사람을 이끌지 말고, 뒷사람으로부터 당할 때 싫었던 방식으로 앞사람을 따르지 말라. …… 이것을 일러 혈구지도라고 한다[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 此之謂絜矩之道].
위의 구절은『대학(大學)』에서 평천하(平天下)가 치국(治國)에 달려 있음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혈구(絜矩)’는 ‘자로 잰다’는 뜻이고, ‘혈구지도’는 사람이 사람을 대할 때 취해야 하는 척도, 즉 바른 방식을 가리킨다. 바른 방식은 자로 잼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때의 자는 바로 나 자신이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느끼고 생각했던 것이 곧 내가 다른 사람을 대하는 방식의 척도가 된다. 이를테면 윗사람의 강압적 태도가 싫었다면 자신은 아랫사람을 그런 태도로 대하지 않는 것이다. 아랫사람의 불성실하거나 부정직한 자세가 싫었다면 자신은 윗사람에게 그런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위의 구절에 따르면, 혈구지도는 상하 관계, 선후배 관계, 동료 관계 등을 포괄하는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원리다.
혈구지도는 사실 그다지 새로운 발상이 아니다. 사람이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려면 매사를 제멋대로 해서는 안 되고, 타인의 처지와 심정을 헤아리는 배려의 태도가 필요하다. 서양에서는 이것을 ‘황금률(golden rule)’이라고 부른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Do to others as you would be done by others].”는 것이다. 기독교 성서에도 황금률에 해당하는 구절이 나온다.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의 정신)이다.”(마태 7:12)
공자는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己所不欲, 勿施於人].”고 했다. 이 말에 대해 일부 이단 기독교인들이 예수는 적극적으로 하라고 했는데 공자는 소극적으로 하지 말라는 주장을 폈으므로 공자의 것은 예수의 것보다 한 단계 낮은 ‘은률(silver rule)’이라고 평가절하 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근거가 박약한 주장이다. 공자도 “내가 서고자 하는 대로 남을 세워주고, 내가 도달하고자 하는 대로 남을 도달하게 해줘라[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라며 적극적으로 바른 행위를 하라고 말한 대목이 있기 때문이다.
『대학』의 “혈구지도”는 성서의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거나 공자의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행하지 말라”는 가르침과 더불어 시대와 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되는 원리다. 이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는 요즘처럼 갑질로 인해 을이 고통 받는 일은 사라질 것이다.
<출전> : 『대학(大學)』
<집필자> : 강중기 / 인하대 철학과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