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구〉: 震驚百里,不喪匕鬯(진경백리,불상비창)
震(진): 우레 소리, 천둥소리 驚(경): 놀라게 하다 喪(상): 잃다, 놓치다
匕(비): 술을 떠내는 국자 鬯(창): 울금으로 빚은 향기나는 제사용 술
〈해석〉: 우레 소리가 천지를 놀라게 해도 제사관은 비수와 술 잔 같은 제기(祭器)를 놓치지 않는다.
〈내용〉:
“우레 소리가 천지를 놀라게 해도 국자와 술잔을 놓치지 않는다[震驚百里 不喪比鬯]”. 이 말은 주역 진괘의 괘사이다. 또한 진괘의 〈단전〉에는 “우레 소리가 천지를 놀라게 한다함은 놀라움이 먼 데서 오는 것이지만 두려움은 가까이 있는 것이다[震驚百里,驚遠而懼邇也]”라고 풀이했으며, 나아가 “이러한 담대하고 온중한 사람라면 출사하여 종묘와 사직을 지킬 수 있으며 제사의 주관으로 삼을 만하다[出可以守宗廟社稷,以爲祭主也]”고 덧붙였다.
‘진경백리(震驚百里), 불상비창(不喪比鬯)’은, 나라의 중요한 직책을 맡을 만한 사람은 천지가 다 놀라 나자빠지는 상황에서도 결코 자기가 현재 맡은 바의 임무를 흩트리거나 망치지 않는 담량과 지혜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주역의 명구이다. 천제(天際) 등 중요한 제사를 지내는 중에 갑자기 예기치 못한 천둥이 천지를 경동시키면 담량과 경험과 지혜가 모자라는 사람은 화들짝 놀라서 손에 쥐고 있는 중요한 물건들을 놓치거나 떨구기 십상이다. 만약 제사관이 귀한 울창주가 담긴 국자나 술잔을 우레 소리에 놀라 떨어뜨리기라도 한다면 그야말로 한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을 지도 모르는 제기(祭器)를 놓치는 일이 된다. 서주(西周) 사람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여긴 일은 제사와 전쟁이었다.(『春秋左傳成公 13年』) 제사와 전쟁은 한 치의 불손함과 소홀함도 허용되지 않는 나라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일이었다. 천하의 일이나 나라의 일에는 천지를 울리는 우레 소리에도 끄덕도 하지 않고 나라의 중요한 일을 굳건히 해나가는 인재가 틀림없이 필요하다. 나라의 살림에 보탬이 되는 기업의 일꾼도 마찬가지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인재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진괘에서는 우레가 치는 여러 상황을 제시하여 각각의 놀라운 상황에 하나하나 적응하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즉 우레가 칠 때 처음에 놀랐다가 웃어넘기는 상황(初爻), 우레 소리에 놀라서 물건을 잃고서는 찾으러 다니는 상황(二爻), 우레에 놀라 망연자실하는 상황(三爻), 우레가 진흙 속으로 떨어지는 것을 목도하는 상황(四爻), 우레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헤아려 일의 핵심을 잃지 않는 상황(五爻), 우레 소리에 놀라 눈을 휘둥그레 뜨는 상황(上爻) 등 여섯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진괘는 바로 이러한 온갖 ‘우레 소리’들을 하나하나 경험하여 마침내는 ‘震驚百里, 不喪比鬯’의 경지에까지 도달하는 인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낙관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최고의 경지는 오랜 기간의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한 훈련과 연습을 통해 최고의 경지로 거듭난다. ‘진경백리, 불상비창’의 경지는 결코 태어나면서 주어지지 않는다.
〈출전〉 『주역․•진괘(震卦)』의 괘사(卦辭)
〈집필자〉 박영우/성균관대학교 유교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